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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안보동향

[기획취재] 돌아보는 지난 67년간 남북관계...북한, 여객기 납치·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등에 대해 공식 사과 없어

  • 작성일202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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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대북 유화정책 추진...북한, '적대적 두 국가' 선포하고 군비 강화

지난 67년간 계속된 대남 도발...북한, 공식적인 사과 없어

최근 북한은 남북관계와 관련해 ‘적대적 두 국가’를 선포한 가운데 이재명 정부는 지난 6개월간 대화복원을 기조로 대북확성기 방송 전면 중단, 대북 전단 살포 금지에 이어 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하는 등 일방적인 대북 유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북한은 핵 잠수함을 건조 중이란 사실을 공개하며 동북아 군비경쟁을 고조시킨 데 이어 포탄과 미사일 증산을 추진하는 등 군사적 긴장을 강화시키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 1958년 창랑호 납북 사건을 시작으로, 지난 67년간 남북 간 긴장관계를 고조시킨 사건들을 짚어보고, 남북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958년 창랑호 납북 사건


ⓒ 동아일보 캡쳐
그 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내용 ⓒ 동아일보 "창랑호 월북" 기사 캡쳐

1958년 2월 16일 오전 11시 30분, 승객 31명과 승무원 3명을 태우고 부산 수영비행장을 이륙하여 서울 여의도비행장으로 향하던 대한국민항공사(KNA) 소속 여객기 ‘창랑호’가 경기 평택 상공에서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피랍됐다.

승객으로 위장해 탑승했던 김택선 등 7명의 납치범은 조종실을 점거하고 기장을 위협하여 기수를 북쪽으로 돌렸으며, 기체는 당일 오후 1시경 평양 순안비행장에 강제 착륙했다. 우리 정부와 유엔군 군사정전위원회의 강력한 송환 요구에 따라 북측은 사건 발생 18일 만인 3월 6일, 탑승객 중 26명을 판문점을 통해 송환했다.

그러나 납치 주동자 일당과 행방불명자 등 8명은 돌아오지 못했으며, 피랍된 기체인 창랑호 또한 끝내 반환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항공기 피랍 사건으로 기록됐다.


1968년 1·21 김신조 사태


북한 간첩 김신조가 기자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북한 간첩 김신조가 기자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KTV 아카이브" 유튜브 채널 캡쳐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산하 124군 부대 소속 무장 공비 31명이 청와대 습격과 요인 암살을 목적으로 서울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다.

군·경과의 교전 끝에 29명이 사살되고 1명이 도주하였으며, 김신조 1명이 생포됐다. 이 과정에서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경무관을 포함한 군·경과 민간인이 희생됐다.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거주민 식별을 위한 주민등록번호 제도를 도입했다.


1968년 이승복 어린이 살해 사건


이승복기념관에 걸린 이승복 초상화 ⓒ
이승복기념관에 걸린 이승복 어린이의 초상화 ⓒ "채널A" 유튜브 채널 캡쳐

1968년 12월 9일 밤, 강원도 평창군 노동리 계방산 기슭의 민가에 울진·삼척 지구로 침투했던 북한 무장 공비들이 침입했다.

공비들은 당시 9세였던 이승복 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저항하자 입을 찢고 살해하였으며, 이 군의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 등 일가족 4명을 현장에서 살해하고 형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 사건은 대남 무장 공비의 잔혹성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기록됐다.


1969년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


YS-11기와 동일한 모델 ⓒ
YS-11기와 동일한 모델 ⓒ "YTN 뉴스" 유튜브 채널 캡처

1969년 12월 11일 오후 12시 25분, 강릉비행장을 이륙하여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YS-11기가 대관령 상공에서 고정간첩 채헌락에 의해 피랍됐다.

기체는 당일 오후 1시 18분경 북한 원산 선덕비행장에 강제 착륙했다. 국제사회의 압박으로 북측은 1970년 2월 14일 승객 39명을 판문점을 통해 송환했으나, 기장과 승무원, MBC 기자 등 12명과 기체는 끝내 돌려주지 않았다.

미귀환자 12명은 현재까지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다.


1971년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


71년 강원도 고성군 해변에 하이재킹한 F27모습 ⓒ 유튜브
71년 강원도 고성군 해변에 하이재킹한 F27모습 ⓒ 유튜브 "갈무리" 채널 캡쳐

1971년 1월 23일 오후 1시 30분경, 속초공항을 이륙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F27 여객기에서 승객 김상태가 사설 폭탄을 터뜨리며 조종실 점거 및 납북을 시도했다.

강원도 고성군 초도리 해변에 비상 착륙하는 과정에서 수습 조종사 전명세 씨가 폭발물을 몸으로 막아 승객들을 구하고 순직했다.

범인은 현장에서 사살됐으며, 승객과 승무원들은 무사히 구조되어 납북은 미수에 그쳤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76년 북한의 판문점 도끼 사건의 현장 모습ⓒ
76년 북한의 판문점 도끼 사건의 현장 모습 ⓒ "KTV 아카이브" 유튜브 채널 캡쳐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 45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미군 제3초소 인근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유엔군 측에 북한군 30여 명이 습격하여 도끼와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 사고로 미군 장교 보니파스 대위와 배레트 중위가 살해되고 다수의 유엔군 대원이 중상을 입었다.

미군은 즉각 '폴 버니언 작전'을 전개하여 나무를 절단하고 무력 시위를 벌였으며, 북한 김일성이 유감의 뜻을 표명하며 사태가 종결됐다.


1983년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


북한 테러단이 아웅산 테러 후 현장모습 ⓒ KTV 아카이브
북한 테러단이 아웅산 테러 후 현장모습 ⓒ "KTV 아카이브" 유튜브 채널 캡쳐

1983년 10월 9일 오전 10시 28분,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일행을 겨냥해 북한 공작원들이 랭군 아웅산 묘소 지붕에 설치한 폭탄을 터뜨렸다.

전 대통령은 행사장 도착 직전이라 화를 면했으나,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등 수행원과 기자 17명이 순직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버마 당국은 수사 결과 북한의 소행임을 발표하고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영화
영화 "마유미"에 나온 폭파 재현 사진 ⓒ "궁금소" 유튜브 채널 캡쳐

1987년 11월 29일 오후 2시 5분경, 바그다드를 이륙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기가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북한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 소속 김승일과 김현희에 의해 폭파됐다.

이 테러로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했으며, 대다수는 중동 건설 현장에서 귀국하던 우리 근로자들이었다.

범인 중 김승일은 자살했고, 압송된 김현희는 88 서울올림픽 방해를 목적인 북한 지령에 따른 테러임을 자백했다.


1997년 분당신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난 김정일 조카 암살사건


북한 괴뢰군에게 피살당한 故이한영씨 ⓒ 연합뉴스
북한 괴뢰군에게 피살당한 故이한영씨 ⓒ 연합뉴스

1997년 2월 15일 오후 9시 50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 아파트 복도에서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인 귀순자 이한영 씨가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괴한 2명에게 권총 피격을 당했다.

이 씨는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사건 발생 10일 만인 2월 25일 끝내 숨을 거뒀다. 수사 결과 이들은 북한 사회안전부 소속 테러 전문 요원들로 밝혀졌으며, 수도권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담한 정치 테러로 큰 충격을 안겼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살해 사건
금강산 관광 중 사망한 故박왕자씨 ⓒ연합뉴스
금강산 관광 중 사망한 故박왕자씨 ⓒ 연합뉴스

2008년 7월 11일 오전 4시 50분경,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관광 지구 내 해수욕장 인근에서 관광객 박왕자 씨(당시 53세)가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박 씨는 해수욕장 주변 울타리를 넘어 북측 통제 구역인 기생바위 인근 해안가를 산책하던 중 북한군 초병이 발사한 소총탄에 등과 엉덩이를 맞아 현장에서 숨졌다. 북측은 박 씨가 정지 명령에 불응하고 도주하여 발포했다고 주장하며 오히려 남한 정부에 사과를 요구했다. 또한 우리 정부의 현장 조사 요구도 거부했다.

정부는 사건 다음 날인 7월 12일부터 금강산 관광을 전면 중단했으며, 이 사건은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은 채 금강산 관광 중단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

북한은 여객기 납치 및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등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으며,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에 대해서만 당시 지도자 차원의 '유감 표명'이 있었다. 

출처 : 프리진 뉴스 유희우 기자 

https://www.freezin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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